김구택은 엉뚱한 곳에서 덜미가 잡혔다는 생각을 한다. 목포에서 소금배 약탈과 외항선으로부터 밀수품을 빼돌리는 밀대와의 접선 작업이 있었지만, 도망쳐버린 오성공이 갑자기 연락을 취하며 죽는 시늉을 해서 부랴부랴 상경했는데, 김인자에게 발이 묶여버린 것이다.

비금면 출신의 김인자가 서울에서 여공생활 일년을 한 사이 이렇게 되바라지고, 사회의식이 강해졌나를 생각하자 서울은 참으로 변신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끼를 여우로 만들고, 사슴을 범으로 바꾸어버리는 마력을 지닌 도시였다. 그래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김구택이 볼 때, 오성공도 놀라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어리버리 실수 투성이에 늘 부족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어느새 배짱좋은 대장부가 되어있는 것이다. 김인자의 치마폭에 놀아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목포에서 바라보던 팔금도 촌놈은 아니었다. 김인자가 말했다.

“저렴하게 인생 사는 사람이 진짜로 촌놈이란 것 알겠죠? 여기서 새 인생 개척할 수 있으니까 꼼짝 말고 내가 하란대로 따라 해요. 그렇게 하겠죠?”

따지고 보면 김인자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방향없이, 진로가 무엇인지 모르고, 막연하게 살아온 청춘이다. 김구택이 우물쭈물하면서 오성공에게 물었다.

“성공이 니 생각은 어떠냐. 여기서 못박을 거냐.” “나는 말죽거리서 경리 일해주면 되는 것이여.”

김인자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배에 헛바람 넣고 살지 말라고 했지요? 깡패 용역이나 해주고 살겠어요? 새롭게 시작해요. 의미있는 삶을 살라니까. 청계천 평화시장으로 가든지, 금호동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대입 준비를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요.”

김인자의 카리스마에 오성공은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김구택 역시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고향에 한번 갔다 오면 안되겠소? 정리할 것이 있으니까.”

“몸뚱이 하나가 전부인 사람들이 뭐가 그리 정리할 게 있어요? 산비탈에 구택씨 집을 한 채 지어요. 자고 나면 판자촌이 늘어나는데 못할 이유가 없죠. 이것 하나 잡으면 특별시에 집 한 채가 생겨요. 그러면 밑천이 생기는 거죠. 문자를 쓰자면 시드 머니가 생기잖아요. 그렇게 해서 인생 시작하는 거예요. 인생 별것 있나요? 헛된 망상 집어치우고 내일부터 당장 시작하는 거예요.”

골목길에 널부러진 판잣집들. 고물 판자떼기와 낡은 군용 천막을 지붕에 씌우고, 찬바람 송송 들어오는 그걸 잡으라고 하다니.

“두꺼운 종이 상자와 판자로 사방을 둘러 벽을 만들고 지붕을 얹어 바람만 가리게 하는 집을 지으라고요? 그건 도시 빈민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 아니오? 그런 곳에서 인생을 시작한다고요?”

“할 거예요. 안한 거예요?”

“그런 집이야 하루에도 열두채씩 지을 수 있지.”

“그럼 한 채라도 지어봐요.”“그럼 한 채 지어드리지요.”

“구택씨 집이라니까요. 거기서 가정학습소 열어요. 그리고 대입 준비해요. 퇴학당한 것도 억울하지 않나요?”

다음날부터 김구택은 오성공과 함께 산비탈을 깎아 집터를 잡았다. 길바닥에 널부러진 판자로 사방을 이어둘러 벽을 만들고, 계곡의 개울에서 천막을 걷어와 지붕을 올렸다.

집을 짓긴 했으나 고물들을 줏어다 지으니 판잣집 가운데서도 눈에 띄게 낡고 찌그러져있었다.

“이 집 너에게 주고 나는 떠나마.”

“그건 안되지.”

오성공이 그를 말렸다.

사실 서울은 반 정도가 판자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6·25동란이 터지자 이북 피난민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어 동광동의 80계단 동네, 용두산 일대, 감천동의 태극도마을, 수정동 일대 등 산비탈에 집중적으로 판잣집이 들어섰다. 그리고 휴전이 되자 그 사람들이 그대로 서울로 몰려들면서 용산구 해방촌 이태원동 청계천변 금호동 옥수동 아현동고개 미아리고개,면목동 휘경동 구로동 신림동 봉천동, 영등포구 일대에 판잣집이 밀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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