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년 전 풍전등화 위기 나라 구하고자 유림들이 설립
사립장명학교로 장성향교에 둥지
국가주도 다른 학교와 남다른 출발
‘배움 통한 구국’ 민초들 염원 담겨
향교서 공부하던 12명이 첫 입학생

학교 소재한 성산리는 옛 장성 중심지
조선시대 장성부 관아·부사 관사 위치
1921년 향교서 옛 관아터인 현 부지 이전
2008년 100주년 행사 갖고 새로운 출발

장성성산초는 1908년 국권 상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장성지역 유림들이 앞장서 설립한 사립장명학교를 모태로 115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2008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세운 ‘100주년 기념비’와 성산초등학교 본관 건물.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장성군은 서울 쪽에서 남도로 올때 가장 먼저 만나는 지역이다. 전남의 관문 역할을 한다. 노령산맥 줄기를 따라 전북과는 경계를 이루고, 광주시와 접해 있다. 사통팔달 도로가 연결돼 있어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호남의 중심으로 볼만하다.  

예로부터 장성은 ‘산이 둘러 있고 물이 굽이쳐 스스로 하늘을 이뤘다’고 표현하듯 자연이 만들어 낸 빼어난 경관과 수려한 풍광이 으뜸인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광주, 나주, 창평과 더불어 호남 문향으로 이름이 난 고장이다. 유림의 고장을 말할때 ‘광나장창’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장성에 대해 일찍이 흥선대원군은 ‘호남팔불여(湖南八不如) ’를 말하면서 ‘문불여장성(文不如長成)’이라 하면서 ‘학문으로는 장성에 견줄 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장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수사(修辭)로, 문향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장성에는 학문과 선비의 고장이란 명성을 갖고 있다.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 선생을 기리는 필암서원을 비롯, 고산서원, 봉암서원 등 서원과 사우가 곳곳에 있다. 

장성성산초등학교가 모태인 사립장명학교의 학생들이 공부했던 장성향교 명륜당 건물./임문철 기자

◇유림 선각자들이 설립 앞장서 
장성성산초등학교는 이런 장성이 지닌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학교다. 출발부터 남다르다. 구한말 개교한 근대식 학교들이 대부분 국가 주도하에 문을 연 것과 달리 민초의 힘으로 탄생했다. 

장성향교 유림들이 뜻을 모아 학교를 설립했다. 그 때가 1908년 4월로 한일강제합방 직전이었다. 나라가 풍전등화 위기에 처하자 전국 각지에서 우국지사들이 개화를 부르짖고 자주독립을 향한 열풍이 일었다. 장성에선 유림들이 앞장서 새 학문의 전당을 세우고 민족 자주 정신을 깨치려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학교가 사립장명학교로, 지금의 성산초 모태가 된다. 따라서 성산초는 고장의 인재를 육성해 지역과 국가의 동량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장성지역 민초들의 염원이 담긴 학교인 셈이다. 

개교 당시 이름인 장명학교는 ‘장성의 미래를 밝힌다’는 뜻을 담겨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치는 않다. 첫 터전은 장성향교 명륜당으로 학생 12명으로 개교했다. 15~45세의 상투를 꽂은 유림 선각자 자녀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향교에서 배우던 서당생도들이 첫 개교한 학교의 첫 학생이란 기쁨을 안고 제1회 졸업생이 됐다. 

개교이후 학생들이 밀려오면서 명륜당 4처 30간에 약 80명의 학생이 방마다 가득했다고 한다. 한 때 학생수가 100명이 넘을 만큼 멀리서 유학온 학생들도 많아 자취방 구하기도 어려웠다. 

1907년 설립인가를 받은 장명학교는1908년 4월 19일에 개교해 보통학교 교과목인 국어와 산수를 가르치게 된다. 1910년 8월에는 사립장성학교로 개칭하고 수업연한을 4년으로 편성한다. 이듬해인 1911년 6월에 공립으로 개편돼 교명을 공립장성보통학교로 바꾼다. 1921년 4월 학제 변경에 따라 수업연한이 6년으로 연장되고, 같은 해 6월 현재의 위치로 교사를 신축, 이전했다. 

장성성산초는 1921년 장성향교에서 옛 장성부 관아터로 신축이전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학교내 세워져 있는 부사비들. /임문철 기자
장성성산초 교내에 있는 수령 130년의 느티나무. 장성군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임문철 기자

◇기차역 위치로 장성 중심지 벗어나
이렇듯 ‘배움을 통한 구국’을 기치로 출발한 장명학교는 일본인이 교장으로 부임, 식민지 교육을 시작하면서 학생수는 급감했다. 나라를 빼앗은 일본 교육은 받지 않겠다는 유림과 장성 주민들의 절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성산초에서 북동쪽으로 800m 거리에 위치한 장성향교에는 개교 당시 학생들의 터전이었던 명륜당이 그대로 자리해 장명학교의 100년 숨결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성산초는 장성읍 북서쪽 외곽 농촌지역인 성산리에 소재한다. 전남의 시·군에 처음 들어선 근대식 학교 대개가 당시부터 현재까지 그 지역의 중심지에 자리한 것과 대조적이다. 학교는 장성군의 중심지인 장성군청이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다. 왜 그럴까.  

장성읍이 이동한 게 주 이유다. 성산초 개교 당시 장성의 중심은 성산리였다. 장성읍 성산리 450번지 학교 부지는 조선 효종 6년(1655) 장성현에서 장성부로 승격된 장성부(府)의 옛터로 부사가 일하는 관아가 있어 ‘원님 고을’로 불렸다. 성산리가 학교에 장성군 보호수로 지정된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여기 저기 산재하고, 부사들의 입비가 세워져 있는 데서  성산리가 장성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산리는 일제 강점기 호남선 철도가 개설되면서 장성 중심지로서 지위를 잃게 된다. 전언에 의하면 당초 장성역은 지금의 위치가 아닌 성산리에 세워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림을 비롯한 성산리 일대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기차역이 들어서지 못했다. 대신 영천리에 기차역이 세워지며 새로운 중심지가 되고, 결국 1921년에 장성읍이 성산에서 현재의 영천리로 옮겨간다.

장성성산초 교내에 설치된 장성부 옛 관아터 지도.
장성성산초등학교는 학교 인근의 성자산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학교에서 바라본 성자산 모습. 산 아래에 장성향교가 자리하고 있다./임문철 기자

◇곳곳에 장학금·장학답 기증비 ‘눈길’
장성의 중심이 옮겨졌어도 성산초는 장성 근대교육의 첫 출발지로 존재감과 함께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학교로서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교내 곳곳에 세워진 장학금과 장학답(돈) 기증비는 지역민들의 학교에 대한 애정과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십시일반 힘을 모아 세운 학교를 주민들이 지원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민의 의지가 읽혀진다.  

성산초는 장성 교육의 ‘뿌리’답게 115년 세월동안 장성과 대한민국을 이끌었고, 이끌어나갈 수많은 동량을 배출했다. 올해 2월 11일 열린 111회 졸업식까지 총 8천833명이 성산초를 졸업했다. 이 가운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정치와 행정가, 인술을 배푼 의사, 종교계 지도자, 문화예술인들도 많다. 

1회 졸업생이 변진갑(작고) 국회의원은 국회 농림분과 위원장으로 대한민국 건국초기 토지 분배 정책 등 많은 농림정책을 입안했다. 제38회 졸업생인 김상현(작고) 국회의원은 국회의설 최장시간인 8시간 동안 마이크를 놓지 않고 연설한 기록을 세웠다. 

전남 농업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김재식(작고) 전 전남도지사는 26회 졸업생이다. 가난한 병자에게 인술을 베풀고, 갈 곳 없는 어린이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며 따뜻한 인술을 펼쳤던 김계윤(작고) 광주 김병원 설립자도 성산초 졸업생(40회)이다. 불교 조계종 10대 종정을 역임한 성관 혜암 대종사 역시 성산초에서 공부했다.

이렇듯 교육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학교임에도 성산초는 도시화와 저출산으로 대표되는 사회변화를 비켜갈 수 없었다. 한때 1천명이 넘던 학생수는 농촌 인구 및 학령인 감소 여파로 1/1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올해 3월 1일 기준 전체 학생수는 96명(유·특수 12명 포함)이 전부다. 6·25전쟁때는 학교 건물이 소실돼 학교 뒷편 동산 나무 아래서 수업을 하는 등 갖가지 풍상을 겪기도 했다. 

장성성산초 역사관에 보관된 1960년대 입학식 모습./장성성산초 제공

규모는 예전같지 않아도 성산초는115년 전 주민들이 염원한 ‘교육 100년 대계’를 더 크게 그려간다.  2008년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맞아 학교와 동문, 지역민들이 한마음이 돼 새로운 ‘100년’ 역사 만들기를 시작했다. 115년전 우리 국권이 풍전등화에 처했을 때 구국의 일념으로 애국·애족의 충효정신을 지닌 유림들의 혜안을 갖고 장명학교를 세웠듯이, 지역과 대한민국을 미래를 위한 인재교육에 뜻을 모은 것이다. 
또 학교 설립 정신과 역사,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역사관도 교내에 마련했다. 역사관에는 동문과 지역민들로부터 기증받은 학교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보관·전시하고 있다. 
조병우(64회) 성산초 운영위원장은 "성산초는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서 배움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는 조상들의 숭고한 뜻이 담긴 학교다. 헐벗고 굶주려도 아이들 교육에 투자해 115년 성상을 이어왔다"면서 "학교가 개교 당시의 꿈을 토대로 더 큰 꿈과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역량을 모으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장성/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