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렇게 해서 새색시와 갓난아이는 그 길로 영영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도록 멀리 격리되어 보내져 버린다거나,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 수 없게 된 새색시가 아무도 몰래 아이를 안고 나가 스스로 함께 목숨을 끊어 버린다거나 하게 되고, 또 처녀라고 사기 혼인을 하게 만든 중매쟁이와 장인 장모는 몹쓸 인간으로 영원히 낙인찍혀 그곳에서 고개를 들고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도록 사정없이 짓밟아버리는 것,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아니 인간다운 일이었을까?그리고 그 일을 단행한 조생은 못된 처가와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늙은 스님이 말을 마치고는 사내아이를 바라보았다.그 이야기를 끝까지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사내아이는 순간 커다란 쇠망치로 ‘쿵!’ 하고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커다란 충격에 사로잡혔다. 어찌 보면, 이른 봄날 나들이 산행(山行)을 나섰다가 우연히 이웃 마을 총각과 눈이 맞아 불륜을 저질러 아이를 가져버린 어머니가 처한 운명이 바로 그 이야기 속에서 다음 날 뱃속의 아가 사슴과 함께 죽을 운명을 기다려야만 하는 암사슴과 같지 않은가 말이다.그러고 보면 바로 저 니그로다 사슴 왕은 의붓아버지 조생이라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과연 니그로다 사슴 왕은 어느 사슴을 그 암사슴 대신 죽이려고 한 것일까? 무리를 거느리는 사슴 왕이었기에 까짓것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제비를 뽑아 결정하면 간단하게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인가!다음날 단두대에 오른 사슴을 잡으려던 신하는 깜짝 놀랐다. 단두대로 올라가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슴은 다름 아닌 황금빛 털을 가진 니그로다 사슴 왕이었던 것이었다. 사슴을 죽이는 것을 담당한 신하는 부라후마닷타 왕이 절대로 저 황금빛 사슴을 죽여서는 아니 된다는 명령을 기억하고는 재빨리 달려가 그 사실을 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러던 어느 날 사카 사슴 왕의 무리 중 새끼를 밴 암사슴이 다음 날 죽을 차례가 되었던 것이었다. 제비를 뽑아 본 결과 그 암사슴이 걸리고 말았던 것이었다.뱃속에 아가 사슴이 자라고 있는 암사슴은 깊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생겨나서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죽을 아가 사슴을 생각해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암사슴은 사카 왕을 찾아갔다. 암사슴은 사카 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왕이시여! 실은 제가 임신 중이어서 곧 아가 사슴을 낳게 될 것인데 제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부라후마닷타 왕은 매일 말을 타고 활을 들고 숲속으로 가서 사슴 사냥을 즐겼다. 끼니때마다 사슴고기 먹기를 좋아하는 부라후마닷타 왕은 날마다 인근 농부와 상인을 불러 몰이꾼으로 이용해 사슴 사냥을 하는 것이었다.집안일도 하지 못하고 날마다 불려 나가 왕의 사슴 사냥 몰이꾼 노릇을 해야 하는 농부와 상인은 생계에 커다란 지장을 느꼈다. 농부와 상인들은 궁리 끝에 두 사슴 권속을 몰아 튼튼한 울타리가 쳐진 왕의 동산으로 몰아넣고 그곳에서 사냥하도록 했다.사슴 사냥을 하는 부라후마닷타 왕은 두 마리 황금빛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자신을 거두어 보살펴 준 의붓아버지의 영전(靈前)에 분향(焚香)하고 삼배(三拜)를 올려 절을 한 스님은 그 앞을 조용히 물러 나와 어려 자기가 살던 집을 바라보았다. 서당에 다니면서 과거급제(科擧及第)하여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왕이 내려주는 어사화(御賜花)를 쓰고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높은 관직(官職)에 올라 뜻을 펼치려 하였던 지난날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떠올랐다.그러나 근거 없는 신분을 가진 주워다 기른 아이라는 탓으로 좌절해야 했던 지난날, 자신이 태어났던 사연을 저 으슥한 헛간 안에서 혹여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 소리를 들은 조생의 아내는 문득 뇌리 끝을 섬뜩하게 스치고 가는 것이 있어 쏜살같이 대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거기에는 중년의 스님 하나가 커다란 대발로 엮어 만든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서 있었다.“스스……스님은 어쩐 일로 이이……이렇게 이 집에 오셨는가요?”조생의 아내가 스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말했다.“실은 어려서 속가(俗家)에 살았을 때 오늘 운명(殞命)하신 고인(故人)의 은덕(恩德)을 깊이 입고 살았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생명은 진작 없어져 버렸을지도 몰랐겠지요.
시선(詩仙)이라 부르는 이백과 함께 당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두보는 이백보다도 더 술을 좋아했다고 하지 않던가! 2차 3차 완전히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신 두보가 술에 취해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떨어져 다쳤는데 문병을 온 친구와 함께 또 술을 먹었다고 하지 않은가! 더구나 당뇨와 폐병에 걸렸는데도 ‘흰머리 몇 개 났다고 좋아하는 술을 버릴 수야 없지 않은가!’라고 노래한 두보는 59세에 장강의 배 위에서 죽어야 할 운명이었던 것이었다. 달을 좋아한 62세에 죽은 이백은 채석강에서 배를 타고 놀다가 술에 취해 물속에 비친 달을 잡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바보천치가 아닌 이상 조생이 어찌 그러한 상황을 모르고 있었겠는가? 다만 침묵(沈默)으로 그 상황을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생 또한 사내아이가 과거를 볼 수 없는 신분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고 또 그러한 일로 사내아이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그날 밤 잠자리에서 아내는 남편 조생에게 사내아이가 떠나간 일을 말했다.“아이가 제 갈 길을 떠나갔습니다”“그래! 다 알고 있었소.”조생은 짤막하게 그렇게 답했다. 두 부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 후 조생이 말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다행스러운 것은 사내아이가 어머니를 깊이 원망(怨望)하는 마음을 가지고 집을 가출(家出)한 것이 아니라 공교롭게도 금강산에 산다는 도인이라는 노인을 우연히 만나 더 큰 꿈을 가슴에 지니고 출가(出家)한 것이었으니 어머니 편에서는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새도 날개가 돋아나면 둥지를 떠나는 것이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면 부모 곁을 떠나 제 길을 가는 것이었다.어머니는 한번 크게 솟구치는 이별의 눈물을 흘리고는 그만 뚝 울음을 그쳐 버렸다. 다시는 보지 못할 죽어서도 이별한 사람이 있는데 살아서 자신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것을 읽는 어머니의 눈에는 금방 뿌연 안개가 가득 어리는 것이었다.‘호랑이도 용도 될 수 없는 운명이기에 차라리 한 마리 이리, 낭(狼)이 되겠습니다.’ 일전에 수염이 새하얀 도인(道人)을 서당 앞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제 운명을 알고나 있는 듯 저를 보고 다가오더니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새장 속에 갇혀서 저 권력자나 부자가 떼어주는 조그마한 지위나 밥 따위를 탐하고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산중도인(山中道人)이라는 자를 백 리를 걸어 힘들게 찾아와
한동안 어머니와 아들은 그렇게 가슴에 묻은 깊은 한(恨)을 뜨거운 눈물로 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품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모든 것을 잘 알았습니다. 진실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사내아이는 어머니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말하고는 고개를 깊숙이 숙여 절을 하고는 소리 없이 자기 방을 향해갔다.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 어머니는 끓어오르는 설움에 북받쳐 뜨건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이었다. 먼 과거를 돌아보는 한 여인의 가슴 속에는 젊음이라는 짜릿한 마약(痲藥) 같은 인생이 준 교묘(巧妙)한 찰나의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렇게 말을 하면서 총각은 칠흑 어둠 속에서 처녀의 입술을 향해 제 입술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본시 불이 붙어 타오르는 남녀의 열정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거기에 대한 칭호는 상황에 따라 또 각기 다른 것이었다. 온당치 아니하게 보이면 불륜(不倫)이라 한없이 추하게 칭하고, 합당하다 치면 불같은 사랑이라고 한없이 극찬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불륜은 떼에 따라서는 야합(野合)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물론 그날 밤 처녀와 총각은 야합하고 말았었다. 그 야합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꽃피고 열매를 맺어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그 말을 듣는 순간 처녀는 자신도 몰래 자꾸 마음이 쏠리는 것이었다. 자연이치와 인연이라는 그 말이 가슴을 마구 뒤흔들었던 것이었다.피 뜨거운 젊은 청춘남녀(靑春男女)는 한번 마음이 동(動)하면 그 몸이 대번 뜨겁게 달아올라 버리기에 참지를 못한다더니 처녀는 불타오르는 가슴에 휘발유를 끼얹은 듯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오르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날 만남이 인연이 되어 총각은 밤이면 처녀의 집을 남몰래 찾아왔고 처녀는 모두 다 잠든 밤이면 아무도 몰래 대문 밖을 나가 총각을 만났던 것이었다.남녀가 우연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꿈을 키워왔던 앞길이 막혀 눈물을 흘리는 사내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는 애간장이 타서 끊어질 것만 같았다. 집안에 같이 살아오면서도 아들이라 말하지 못하고 주워온 아이 취급하고 살아왔으니 오만 슬픔이 마구 끓어올라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제 성인(成人)이 된 아들 앞에서 더는 숨겨서는 아니 되겠다고 어머니는 생각하는 것이었다.“그래! 너도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숨김없이 다 말해주겠다!”굳게 결심을 한 어머니는 먼 과거로 돌아가 그때를 회상하는 것이었다. 사내아이는 눈물을 거두고는 어머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이른바 신분제도(身分制度)! 양반 사대부의 자제라 할지라도 서얼(庶孼)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었고, 과거시험에 응시할 자격조차도 주지 않았으니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없는 주워다 길렀다는 사내아이는 과거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서당 공부라는 것이 학문수양(學問修養)하여 인격도야(人格陶冶)를 목적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고 과거시험을 보아 입신출세(立身出世)를 향한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부를 하였던바 그것이 좌절됨을 안 사내아이
인간이라는 동물이 본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남의 티끌 같은 소소한 잘못에 대하여서는 칼날같이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커다란 잘못에 대하여서는 하염없이 관대한 것이었으니 그것을 극복하고 뛰어넘어 중용지심(中庸之心)을 찾아 지켜낼 수 있음이 곧 현자(賢者)요 성현(聖賢)이 아니겠는가!아무튼지 간에 조생은 첫날밤 새색시의 부도덕(不道德)한 불륜(不倫)으로 인해 낳은 자식을 마음으로 감싸 안았고 또 관용(寬容)을 베풀어 지혜(智慧)로써 고통(苦痛)스러운 난관(難關)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무사태평(無事泰平)하게 되돌려 막음 하였던 것
그때가 아쉬워 끝없이 계속 뒤돌아본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앞으로 살아가는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고 장애만 될 것일 뿐으로 도무지 부질없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은 어떤 일을 겪으면 그 일 속에서 얻어야 할 일 즉 깨달아 알게 된 것과 반성해야 할 것을 분명히 판단해 알았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나아갈 길을 결정한 것을 향해 전진하기 위하여 첫 한 발을 떼었다고 한다면, 도무지 다시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에 그러한 부질없는 짓은 모조리 소모전(消耗戰)이 되고 말 것이었다.시루가 떨어져 깨진
지게 옆에 앉아서 쉬고 있던 맹민이 말했다.“어르신! 이미 지게에서 시루가 떨어져 깨져 버렸는데 뒤돌아본다고 깨져버린 시루 조각이 다시 붙기라도 한단 말인가요?”곽태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허허! 과연!……”곽태는 이미 떨어져 깨져버린 시루에 연연하여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그것에 집착해 있었는데 저 젊은이는 이미 깨져버린 시루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미련도 갖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재촉해 갔으니 그가 한 수 위가 아닌가! 곽태는 젊은이의 결단력(決斷力)과 비범(非凡)함에 놀라 말했다.“그대는 어찌하여 이 시루지게
“어허! 그래,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장인이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누가 이 몹쓸 짓을 했을까? 아이 키울 밥이 없어 가난한 사람이 내다 버렸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처녀와 총각이 눈이 맞아 남몰래 아이를 낳았다가 내다 버렸을까?”장모가 갓난아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제가 이 마을로 장가를 든 첫날 밤 이 마을에서 이 아이를 주웠으니 제가 기르겠습니다. 이 는 필경 이 아이와 저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이기에 이렇게 만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인 장모님은 염려 놓으시고 어서 방 안으로 들어가시지요……이놈아! 그 아이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