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순배 술을 들이켜던 박옥주가 갑자기 몽롱하게 취기가 오르는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오르고 말하는 것이 발음이 꼬이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사이 최부자 집 일을 보러 바삐 다니느라 피곤이 겹쳤고, 또 윤과부에게 시달리랴 집의 마누라에게 시달리랴 몹시 고달플 것이었다. 거기다 예쁜 숙향을 만나 술을 연거푸 들이켰으니 정신이 몹시 알딸딸해질 밖에 없었다.“어어! 천하의 숙향을 보니 내 내가 많이 취하는구나!”박옥주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아이고! 서방님, 이년과 신접살림 내려고 하는데 그새 취하면 어떡하나요?”숙향이 박옥
“에이! 죽으면 삭아질 육신, 뭐 그리 아낄 것 있겠소! 서방님, 이 치마 한 장 덤으로 벗어버리리다!”숙향이 술잔을 들고 일어나더니 아래 입은 겉치마 끈을 한 손으로 핑! 잡아당겨 스르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것을 훌렁 벗어던져 버렸다. 박옥주가 치마를 벗어 던져버린 숙향을 보니 하얀 속살 보드라운 젖무덤이며 탄력 있는 아랫배가 얼른 눈 끝에 박히는 것이었다. 박옥주는 순간 숨이 큭! 막히는 것이었다.“어이구야! 숙향아! 이 서방님 죽는다! 어서 이리 와서 안기거라!”박옥주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숙향을 한 품에 안으려고 달려들
박옥주가 혹여 또 지난번 흉악한 화적떼 패거리가 문밖이나 벽 너머에서 혹여 엿듣지나 않을까 두려워 목소리를 최소한 낮게 하며 말을 홱 비틀어 돌려버렸다.“아이구야! 서방님! 오천 냥이 있을라하면 이년과 멀리 도망가 깨가 쏟아지게 신접(新接)살림을 나면 어떻겠소?”숙향이 박옥주를 바라보며 눈짓을 찡긋하며 속삭였다.“허 허흠! 그 말이 정말이렷다!”박옥주가 숙향의 말에 마음이 순간 동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엉기는 소리를 했다.“아따! 서방님도 맨날 거짓말만 하는 년한테 당하기만 했소. 요년 말이 거짓말 같으면 오늘 밤 술이나 한잔 마시
그날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지자 박옥주는 낯선 사람 하나에 황소가 달린 수레를 하나 잡아끌고 최부자 집 대문 앞으로 갔다. 마침 최부자는 돈 일만 냥을 대문 앞에 쌓아놓고 있었다. 최부자 집에서 일하는 종자들이 돈을 수레 위에 실어 주었다.“소리 소문없이 일사천리로 일을 보아야 할 것이야!”최부자가 돈을 싣고 떠나려는 박옥주에게 말했다.“최부자님, 염려 놓으십시오. 쥐도 새도 모르게 잘 전달하겠습니다.”박옥주가 깊이 고개를 수그려 절을 했다.“그럼, 내일 관가에 송사를 걸도록 하시게나!”“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박옥주는 최부자와
김진사가 말을 멈추고 딸을 바라보았다.“아, 아버님,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요?”김규수가 영문을 알지 못하겠다는 듯 아버지 김진사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그렇구나! 최부자 집에서 정식으로 혼사를 물어왔다면 그것을 깊이 생각해 따져 볼 필요가 있겠지만, 저렇게 억지로 흉계를 꾸며 혼사를 하자고 하니 그것은 거론할 까닭이 우선 없구나! 정식 혼사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저리 흉계를 꾸며 덤비는데 이는 혼사를 하던, 아니 하던 결과적으로 우리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혼사를 하면 사람들은 최부자가 말한 너의 부정한 행위가 사실이라고
“예, 잘 알겠습니다. 아버님, 오늘에야 비로소 궁금하던 것을 모두 그 뜻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김규수가 아버지 김진사를 바라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말했다.“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다. 항상 무슨 일이든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라. 그리고 인품이 고매하고 뛰어난 분이 있거들랑 묻기를 주저하지 말아라.”김진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예, 그러도록 힘쓰겠습니다. 아버님.”“그래, 그런데 오늘 저 최부자가 뜬금없이 와서 날벼락같이 까닭 없는 이유를 들먹이며 혼사를 들먹이고 가니 가슴이 몹시 무겁
김진사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딸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기에 영의정 사직서를 내고 낙향하신 즉시 너의 할아버지께서는 집안의 노비에게 농토를 고루 나누어 주고 신분을 해방해 주고는, 당신은 겨우 식구들이 먹을 만큼의 농토만 남겨 놓고는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을 실현하였던 것이지. 그러나 그 면천해준 노비들이 봄가을로 찾아와서는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농사일을 해주고는 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그것도 단호히 거부하시곤 했단다.”김규수는 아버지 김진사의 말을 듣고는 농번기 때면 정기적으로 항상 이 집안의 일을 해주려고
김진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소위 참된 인간을 기른다는 교육자라는 자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위로는 관계기관에 종사하는 관리들과 알게 모르게 결탁하여 당파(黨派)에 따라 요령껏 줄서기 하면서 제 자식과 제 제자만을 위한 협잡질을 일삼고, 그것을 미끼로 제자들에게는 쌀 말에 달콤한 것들을 남모르게 꿀꺽꿀꺽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꼴을 지켜보면서 참된 선비는 그러한 교육하는 짓을 삼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부교육(不敎育)을 주장하신 것이다.”“예! 아버님, 할아버지께서 아버님께 진사시까지만 응시하고 과거를 보아 관리가
지금 자신은 절대로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아니 절대로 아니 되었다. 신과부가 아리따운 규수를 보고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아이고! 우리 같은 못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저리 고운 하늘나라 선녀님이 계셨다니, 아씨! 어서 와서 이것들을 좀 보세요!”신과부가 물건들을 쫙 펼쳐 놓으며 규수를 반겼다. 어머니와 함께 나온 규수가 마루에 늘어놓은 화장품에 여인들이 규방에서 쓰는 노리개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고운 얼굴선에 총명한 눈망울을 별처럼 반짝이며 이것저것 물건들을 눈여겨보는 것이었다.“이 노리개 참으로 곱구나!
그렇게 말을 하는 저 박옥주가 윤과부에게 들려준 백 냥을 기어코 빼앗아 챙겨 그 돈을 들고 곧장 기생집으로 직행했더란 말인가!‘허허! 박옥주라! 말은 참으로 반지르르하니 청산유수(靑山流水)라!’ 말로 떡을 할라치면 천하 사람이 모두 다 먹고 세 개가 남는다고 하더니, 임기응변(臨機應變) 잔머리에 능통하고 언변이 유창 한데다가 꿍꿍이속으로는 오직 권전색 삼도만을 탐하는 간사한 작자라고 한다면 과연 그 끝이 어떠하겠는가 심이 궁금하지 아니한가?이처럼 세상에는 말과 속이 저렇게 완전히 다른 가짜들이 허다한 것이었으니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
박옥주와 윤과부가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방안에 앉았다.“어서 오시구려!”정씨 부인이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마님, 평안하시지요.”윤과부가 말했다.“그래, 그래, 금반지와 은비녀가 준비되었으니 이를 가지고 가서 일을 잘 성사 시켜 주시게나!”정씨 부인이 그것을 담은 조그마한 나무 상자의 입구를 박옥주와 윤과부 앞에 열어 보이며 말했다. 둘은 금반지와 은비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만석꾼 부잣집이라 값나가는 금반지와 은비녀가 붉은 비단보 위에 단정이 놓여있었다. 금반지 둘레에는 봉황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끝이 뭉툭한 은비녀에는 그 끝에
이제 박옥주의 처지에서는 최부자 집 일을 서둘러 진행해야 했다. 오직 돌파구는 그 일을 하면서 최부자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밖에는 없었다. 비록 그 대가가 백 냥이라고는 하지만 팥죽 장사 신과부가 김진사 댁 규수 방에 금반지와 은비녀를 귀신도 모르게 두고 오는 그 어려운 일을 외상으로 맡아준다고 하니 한시름 덜게 된 것이었다. 그것을 성사시킨 윤과부에게 대한 그 값이 바로 전에 박옥주가 쏟은 그 쌍코피가 아니고 무엇이랴!박옥주가 쌍코피를 쏟아내도록 전력질주(全力疾走)를 한 까닭으로 대만족(大滿足)을 하여 기분이 좋아진 윤과부가 저녁
“오! 오매! 아이고! 아침에는 자빠져 버린, 고 잡녀러 것이 고로코롬 썽난 호랑이 같이 싸납게 달려들어서 아주 사람을 잡네. 그려! 숭악한 고놈이 아침저녁을 알아보고 가리나 보아! 아이고야!”윤과부가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박옥주는 의기양양(意氣揚揚)하여 기분이 좋아 헤벌쭉 웃음을 삼켜 물었다. 그런데 웬걸 코밑이 비릿하니 찝찔했다. 얼른 코밑을 손끝으로 훔쳐보니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어어! 오라버니, 쌍코피가 터졌나부네! 줄줄 세내 그랴!”그것을 본 윤과부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아이고! 그런가!”박옥주가
“아이고 이놈! 망아지야! 엉덩이에 뿔 난 망아지야! 더 세게! 더 세게! 아이구야! 나 죽네! 나죽어!”윤과부가 끙끙 앓으며 소리쳤다.“어라! 어라! 히히히! 히히히히힝! 이히히힝힝! 이히! 이히히히힝!”박옥주가 그 소리에 광기(狂氣)가 동했는지 신나게 마당을 뛰어다니는 망아지처럼 정말로 망아지 우는 소리를 흉내 내며 훌떡 훌떡 위에서 뛰었다.“아이고 이놈! 망아지! 개 망아지냐! 소 망아지냐! 우는 것이 왜 시원찮다! 탁! 쎄래 부러! 잡것! 시방! 웃는 것이냐? 우는 것이냐? 아이고! 나 죽네! 아! 오오오……오! 옴마!”윤과
윤과부가 나가려다 말고 박옥주가 완강하게 붙잡고 늘어지자 슬그머니 몸을 맡겨왔다. 이때다 싶은 박옥주는 일발필중(一發必中)의 자세로 번개같이 윤과부를 부엌문 앞 방바닥에 눕히고는 막무가내로 치마를 훌렁 벗기더니 번쩍 말처럼 올라타고 사정없이 짓누르는 것이었다.“어마마! 아침같이 힘없이 팍 죽으면 저녁밥 없을 것이니 알아서 해라 잉! 오마마마!……”윤과부가 박옥주에게 마지못해 몸을 내주며 소리쳤다.“걱정 붙들어 매라고! 아주 요놈이 미친 기가 나서 길길이 날뛰니깨!”박옥주가 윤과부를 달싹 못하도록 꽉 붙들어 잡고 찍어 누르며 말했다.
한동안 말없이 한숨을 내쉬며 이 궁리 저 궁리 고민하고 있던 박옥주가 결심한 듯 무겁게 말을 냈다.“으음! 그 백여시 같은 여편네가 욕심이 하늘을 찌르니 나라도 별수 없수다! 최부자 집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 수밖에 더 있겠소. 오라버니!”윤과부가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도망간 마흔 냥이 쉰 냥이 되어 다시 되돌아오는 찰나였다. 윤과부는 속으로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남아일언중천금(南兒一言重千金)이라! 어찌 최부자와의 약속을 저버린단 말인가! 돈보다도 소중한 것이 인사(人事-사람의 일)라! 그리고
“헤이! 그려! 암튼 나는 갈라네. 혹여 윤과부에게 오늘 팥죽 먹고 간 내 이야길랑은 죽어도 하지를 마소 잉!”박옥주는 팥죽값을 치르고는 신과부에게 입단속을 하고 일어섰다. 마침 머리가 허연 늙은 할머니 하나가 팥죽을 사 먹으려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나으리! 걱정은 붙들어 매시오! 쓸모없는 소리는 아무 데나 안 하는 사람이니까요!”신과부가 다짐을 하듯 말했다. 박옥주는 저 팥죽 파는 여인네가 그래도 입은 무거운 데가 있구나 하고는 나올 밖에 없었다. 도대체 쉰 냥이나 되는 큰돈을 받으려 한다는 말은 초장에서 꽉 막히고 말았으니 되
“그렇다면 이년을 잡아 팔아야지요.”신과부가 한치도 머뭇거림 없이 당차게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박옥주는 이상하게도 신과부에게 마음이 퍼뜩 쏠리는 것이었다. 지난밤 기생 숙향을 사러 갔다가 된통 혼이 나가게 당하고 나온 터였는데도 저 여우같이 생긴 팥죽 장사가 자신을 잡아 판다고 하는 말에 박옥주는 또 심사가 흔들리는 것이었다.“허허! 그래, 맛없으면 꽁꽁 묶어 잡아 팔아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크게 혼이 날 것이야!”박옥주가 웃으면서 농을 받아 넘었다.“그런데 그럴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구만요!”커다란 가마솥을 열고 김이
얼마나 잤을까? 박옥주가 눈을 뜨니 대낮이었다. 허기를 느낀 박옥주는 옷을 입고 부엌으로 나가 밥을 먹으려다 말고 팥죽 장사 신과부가 퍼뜩 떠올랐다. 장으로 나가 팥죽이나 한 그릇 사 먹고 신과부 동태나 파악해볼까 싶었다. 과연 이런 위험한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박옥주는 괴춤을 뒤져보았다. 지난밤 도적질을 당한 백 냥과 다르게 괴춤에 넣어둔 닷 푼은 그대로 있었다. 도적놈이 백 냥은 가져갔으되 푼돈은 그냥 둔 것이었다. 대개 큰 것을 목적으로 둔 자들은 작은 것은 눈에 뵈지 않는 것이었다. 박옥주는 괴춤
박옥주가 열을 내며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없어진 돈을 어디서 준단 말인가? 어떻게든 그 일을 추진하여 그다음 기회를 보아서 최부자에게 왕창 돈을 긁어내야지 도적질 당한 뻥 뚫린 백 냥 구멍을 저 윤과부에게 들통나지 않게 메꾸고 이 어지럽고 혼란한 가슴 터지는 난국(難局)을 헤쳐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이 궁리 저 궁리로 박옥주는 속으로 끙! 앓으며 온몸에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그러기에 윤과부를 올라타고는 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처음에 나가떨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아이구! 오라버니, 알았구만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