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년을 잡아 팔아야지요.”신과부가 한치도 머뭇거림 없이 당차게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박옥주는 이상하게도 신과부에게 마음이 퍼뜩 쏠리는 것이었다. 지난밤 기생 숙향을 사러 갔다가 된통 혼이 나가게 당하고 나온 터였는데도 저 여우같이 생긴 팥죽 장사가 자신을 잡아 판다고 하는 말에 박옥주는 또 심사가 흔들리는 것이었다.“허허! 그래, 맛없으면 꽁꽁 묶어 잡아 팔아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크게 혼이 날 것이야!”박옥주가 웃으면서 농을 받아 넘었다.“그런데 그럴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구만요!”커다란 가마솥을 열고 김이
얼마나 잤을까? 박옥주가 눈을 뜨니 대낮이었다. 허기를 느낀 박옥주는 옷을 입고 부엌으로 나가 밥을 먹으려다 말고 팥죽 장사 신과부가 퍼뜩 떠올랐다. 장으로 나가 팥죽이나 한 그릇 사 먹고 신과부 동태나 파악해볼까 싶었다. 과연 이런 위험한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박옥주는 괴춤을 뒤져보았다. 지난밤 도적질을 당한 백 냥과 다르게 괴춤에 넣어둔 닷 푼은 그대로 있었다. 도적놈이 백 냥은 가져갔으되 푼돈은 그냥 둔 것이었다. 대개 큰 것을 목적으로 둔 자들은 작은 것은 눈에 뵈지 않는 것이었다. 박옥주는 괴춤
박옥주가 열을 내며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없어진 돈을 어디서 준단 말인가? 어떻게든 그 일을 추진하여 그다음 기회를 보아서 최부자에게 왕창 돈을 긁어내야지 도적질 당한 뻥 뚫린 백 냥 구멍을 저 윤과부에게 들통나지 않게 메꾸고 이 어지럽고 혼란한 가슴 터지는 난국(難局)을 헤쳐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이 궁리 저 궁리로 박옥주는 속으로 끙! 앓으며 온몸에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그러기에 윤과부를 올라타고는 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처음에 나가떨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아이구! 오라버니, 알았구만요. 아
박옥주는 그 자연이 준 본능에 따라 백 냥의 돈을 거머쥐자 이름난 미인 숙향을 향해 저 당랑처럼 요량 없이 돌진하였고, 결국 그것을 노리는 자들 즉 주막집 주인 여자 서향의 수레바퀴에 깔려 압사당하고 만 것이다. 서향은 제나라 장공처럼 당랑의 용기를 가상하게 여겨 피해 갈 줄 아는 아량이 절대로 없는 여자였고, 반대로 그것을 이용해 당랑의 암컷처럼 아니 당랑의 암컷보다도 더 잔인하게 일도 치르기 전에 그 모가지를 힘껏 물어뜯어 버린 것이었다.자신이 당한 줄도 모르는 박옥주는 돈주머니를 털려버린 채로 그날 아침 된통 죽을상을 하고는
저 사마귀 당랑(螳螂)은 암컷을 만나 교미가 끝나면 그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어 버린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수컷 당랑은 그 암컷을 만나 교미하기를 목숨을 버려서라도 그만두지 않기에 해마다 당랑은 저 풀숲을 무더기로 날아다니는 것이 아닌가!당랑거철(螳螂拒轍)!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이 사냥을 나가는데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다리를 치켜들고 수레바퀴를 막아서는 것이었다. 장공이 그놈을 보니 기이하기도 하고 또한 우습기도 한 것이 아닌가!“이놈은 무슨 벌레인데 이다지도 당돌한가?”“그놈은 사마귀라는 벌레인데 오직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고
서향은 여인의 향내에 취해 무작정 날아 들어오는 날 파리 같은 촌뜨기들이 돈을 마련해 들고 찾아오면 그 촌뜨기들을 상대로 나이 먹은 기생 귀연을 비롯한 볼품없는 기생들을 한사코 들여보내 숙향의 가치를 드높였다. 숙향을 기대하고 찾아온 촌뜨기들은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서너 날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다가 결국 돈이 떨어지면 제풀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숙향은 그림 속의 떡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더구나 박옥주처럼 커다란 돈주머니를 차고 오는 어리석은 바보가 가뭄에 콩 나듯이 어쩌다 간혹 있는데 그때는 그 낌새를 알아차린 서향이
서향이 소리쳐 통곡했다. 박옥주는 하늘이 무너져내린 허탈한 심정으로 길게 한숨을 연거푸 들이쉬었다. 최부자와 약속한 일을 추진할 돈 백 냥을 졸지에 잃어버린 박옥주는 막다른 벼랑 앞에 자신이 서 있음을 실감했다.그러나 이것을 해결할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관가에 고발한다고 하더라도 그림자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놈들을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한순간 쾌락에만 눈이 멀어 아무런 생각 없이 우선 먹고 마시고 즐기고 보자 했던 것이 이리도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단 말인가!더구나 바라던 숙향의 손목 한번 잡아보지도 못하고 나이 목은
칼을 든 복면강도(覆面强盜)는 박옥주의 돈주머니를 들고 그 즉시 소리 없이 방을 나가 사라져버렸다.“아이고! 사람 죽네!”귀연이 달려들어 혼절해 쓰러져 버린 박옥주를 흔들었다. 찬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온몸을 주물러주자 박옥주는 간신히 정신을 되찾았다.“아이고! 내 돈! 내 돈!……”박옥주는 눈을 뜨자마자 돈타령을 했다.“아이고! 어흐흐흑! 나으리! 우리도 그 화적떼 놈들에게 당했구만요! 안방을 온통 털렸어요!”귀연이 박옥주를 주무르고 북새통을 치르는 동안 이미 방안에 와 있던 주막집 주인 서향이 소리쳤다.“어허! 그래!……어
천하의 권력이란 것은 무력(武力)에서 나오는 것일까? 돈에서 나오는 것일까? 폭력(暴力)이 우선이냐? 금력(金力)이 우선이냐? 아무래도 난세에는 칼을 잘 쓰는 무장이 으뜸이겠으나 평화로운 시대에는 돈 가진 자가 으뜸이겠다.처음 박옥주가 화가 나서 폭력으로 이들을 제압했다고 한다면, 술에 취해 자신도 몰래 슬그머니 돈 자랑을 하자 숨어 있던 이 집의 귀보숙향(貴寶淑香)이 들어오지 않는가!“나리께 인사 올리거라!”서향이 말했다.“나으리! 숙향 인사 올립니다.”오월 모란꽃같이 화사한 숙향이 박옥주 앞에 무릎을 꿇고 술을 올리며 말했다.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박옥주는 가운데 퍼질러 앉아 마른 입맛을 다셨다. 사납게 화를 냈던 탓이라 입맛이 바싹 탔다. 그리고 최부자 집까지 시오리 길을 왔다 갔다 걸어온 탓이라 허기도 졌다. 박옥주는 잘 삶아져 올라온 커다란 닭 다리를 북 찢어 질겅질겅 씹어 물었다.그때 중년의 기생 귀연이 문을 슬그머니 열고 들어왔다.“나리!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어 어흠!”박옥주는 닭 다리를 씹다 말고 귀연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했다.“소첩 귀연! 용서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나으리!”귀연이 무릎을 꿇고 앉아 공손히 술잔을 채웠다.“어른
그 북새통에 옆방에서 젊은 기생 숙향이와 함께 먼저 온 손님을 받고 있던 주막집 늙은 주인 여자 서향(瑞香)이 황급히 뛰쳐나와 박옥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나리! 저의 잘못입니다. 저를 죽여 주십시오!”“으음! 그래 이리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년은 어찌해야 하겠는가?”박옥주가 주인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장 요절을 내야 옳으나 한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지요?”서향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그래?”박옥주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 무릎을 꿇고 엎드린 중년의 기생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년아! 어서 나리께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아이구, 나리! 어서 오십시오!”얼굴에 분을 진하게 바른 꽃 같은 기생이 뛰쳐나와 반갑게 맞았다. 박옥주는 ‘어흠!’ 하고 헛기침을 크게 하고는 안내해 주는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방안에 걸게 주안상이 차려지고 박옥주 옆으로 기생이 하나 와서 앉았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젊은 기생이 아니라 화장을 진하게 한 중년의 늙은 기생이 와서 앉았다. 큰돈을 들고 온 박옥주는 크게 마음을 먹고 한탕 오지게 놀아보려고 했는데 대접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초장부터 심사가 크게 뒤틀려버렸다.“어허! 어째서 좋은 술상 머리에 시든 꽃이라더냐!
장터 단팥 집 앞에 당도한 박옥주는 그 사이 생각이 바뀌어서 자신이 직접 나서서 신과부에게 이 일을 말하는 것보다도 친한 윤과부가 말하는 게 좋다고 결정했다.“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도 신과부 일은 매씨가 추진하는 게 좋겠네.”“”왜 오라버니가 직접 말하지 않고요?“윤과부가 말했다.“내가 나서면 모양새가 좋지 않네. 매씨가 사정 이야기를 하고 이 일을 잘 부탁해 보시게나.”박옥주는 한발 물러서며 윤과부에게 그 일을 맡기고 말았다. 박옥주는 그 사이 무엇 때문에 생각이 변했을까? 그것은 신과부가 가질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럼, 나는 오라버님만 믿고 잘하겠구만요. 이익을 반분한다는 것은 절대로 잊으면 안 되어요. 그랬다가는 큰일 날 것이이구만요!”윤과부는 박옥주에게 다짐이라도 시키듯이 재차 물었다.“어허!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가!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서로 합심(合心)을 해야 일이 잘 풀릴 것이 아닌가!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버리면 될 일도 아니 되는 법일세! 그런 걱정일랑 꽉 붙들어 매고 김진사 댁에 화장품 장사로 꾸미고 들어가서 그 규수 방에 금반지와 은가락지를 두고 올 아낙이나 어서 물색해 보시게나? 김칫국부터 잔뜩 마시면 일이 되겠나
최부자가 박옥주를 바라보며 쐐기를 박아 말했다. 최부자 입장에서는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입단속을 하고, 자기 보안을 미리부터 철통같이 해 두자는 것이었다. 자칫 이런 부정한 짓이 밖으로 새어나가 소리 없이 소문이 퍼져나가게 된다면 명예는 물론이고, 모조리 관가에 붙들려가 상상도 하기 힘든 큰 곤욕을 치르게 되리라는 것을 최부자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최부자가 상대하려는 김진사는 하찮은 무지렁이 백성이 아닌 천하 사람들이 존경하는 전통 있는 선비 유생 집안이 아닌가!“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희 두 사람 입조심 단단히 하고
박옥주가 최부자 내외를 번갈아 바라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박옥주의 말을 들은 최부자는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정씨 부인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 일은 최부자 자신보다도 정씨 부인이 추진하고 있는 사항이 아니던가! 정씨 부인은 남편 최부자의 눈빛을 의식하고는 입을 열었다.“박서생의 말씀 들어보니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그 김진사 댁에 화장품 장사로 꾸미고 들어가서 금반지와 은비녀를 그 규수의 방에 귀신도 몰래 두고 올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나요?”“아! 그렇지요! 마님, 그것은 우리가 잘 알아서 할
박옥주가 자신이 계획한 계략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그다음 날 최부자 어르신이 김진사 댁을 찾아가 김진사를 만나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댁의 따님과 나의 아들이 오래전부터 사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고 말하면서 이런 괴이한 소문이 계속 퍼져나가면 양가 모두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니 빨리 혼례를 치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김진사는 십중팔구 자신의 딸을 불러 이게 무어냐고 추궁을 할 터이고 딸은 펄쩍 뛰며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으음!.......... 그야 해보나 마나 없는 사실이라고 의
박옥주가 말을 멈추고는 최부자 내외를 바라보았다.“하!……”이쯤에서 최부자 내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박옥주가 입맛을 쩝! 다시며 입을 열었다.“마동은 당시 그 노래를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던 것은 선화공주에게 몰아닥칠 신라 왕궁의 엄청난 멸시와 따돌림을 미리 계산하였던 것이고, 결국 신라 왕실의 분노한 아버지 왕이 선화공주를 귀양살이 보내버리자 그 길목에서 마동이 기다리고 있다가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리고 와서 같이 살았는데, 훗날 마동은 백제의 왕이 되고 선화공주는 왕비가 되었지요. 유언비어(流言蜚語) 전략(戰
최부자가 눈으로 인사를 하며 말했다.“최부자 내외님께 인사 올립니다.”박옥주가 말을 하며 고개를 수그리고는 최부자를 흘깃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박서생께서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여기 윤매파에게 우리 이야기는 잘 들어서 아시겠지요?”정씨 부인이 말했다.“예! 잘 알고 있지요.”박옥주가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박서생이 최부자 어르신 내외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무슨 계책이 있는지 설명을 좀 해 올리시지요.”윤매파가 박옥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최부자는 과연 저자가 그럴듯한 뾰쪽한 계책이나 있을 수 있을까? 의심하며 박옥
최부자는 아랫목에 정씨 부인과 나란히 앉아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오는 박옥주와 매파라는 윤과부를 바라보았다. 최부자가 첫눈에 보기에 박옥주는 건장한 체격에 눈이 부리부리 한 것이 성깔깨나 쓰는 사람 같아 보였다. 최부자는 사람을 볼 때 습관처럼 허공달과 비교해 보는 버릇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났는데 허공달은 날카롭고 총명한 눈매에 인자한 표정이 흐른다고 한다면, 저 박옥주는 어디지 모르게 뭉툭하고 마구 돌진하려는 듯한 공격적인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허공달이 섬세한 문인의 기품이 있었다고 한다면 저 박옥주는 괄괄한 장비 같은 우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