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아쉬워 끝없이 계속 뒤돌아본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앞으로 살아가는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고 장애만 될 것일 뿐으로 도무지 부질없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은 어떤 일을 겪으면 그 일 속에서 얻어야 할 일 즉 깨달아 알게 된 것과 반성해야 할 것을 분명히 판단해 알았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나아갈 길을 결정한 것을 향해 전진하기 위하여 첫 한 발을 떼었다고 한다면, 도무지 다시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에 그러한 부질없는 짓은 모조리 소모전(消耗戰)이 되고 말 것이었다.시루가 떨어져 깨진
지게 옆에 앉아서 쉬고 있던 맹민이 말했다.“어르신! 이미 지게에서 시루가 떨어져 깨져 버렸는데 뒤돌아본다고 깨져버린 시루 조각이 다시 붙기라도 한단 말인가요?”곽태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허허! 과연!……”곽태는 이미 떨어져 깨져버린 시루에 연연하여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그것에 집착해 있었는데 저 젊은이는 이미 깨져버린 시루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미련도 갖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재촉해 갔으니 그가 한 수 위가 아닌가! 곽태는 젊은이의 결단력(決斷力)과 비범(非凡)함에 놀라 말했다.“그대는 어찌하여 이 시루지게
“어허! 그래,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장인이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누가 이 몹쓸 짓을 했을까? 아이 키울 밥이 없어 가난한 사람이 내다 버렸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처녀와 총각이 눈이 맞아 남몰래 아이를 낳았다가 내다 버렸을까?”장모가 갓난아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제가 이 마을로 장가를 든 첫날 밤 이 마을에서 이 아이를 주웠으니 제가 기르겠습니다. 이 는 필경 이 아이와 저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이기에 이렇게 만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인 장모님은 염려 놓으시고 어서 방 안으로 들어가시지요……이놈아! 그 아이를 이
“어허! 새 서방님도 그러시나요? 제 귀에도 그러는데……새 서방님! 저건 분명 갓난아이 울음소리 같아요?”더벅머리 사내가 발을 멎고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며 놀라 말했다.“어디냐? 어디서 나는 소리냐?”조생이 소리쳤다.“아! 새 서방님! 저기 저 빨래터 너럭바위 위에 뭐가 보여요!”더벅머리 사내가 놀라 소리치며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어! 그래! 그럼, 어서 가 보자!”조생이 말했다.“예! 새 서방님!”더벅머리 사내가 헐레벌떡 뛰어갔다. 그리고는 바위 위에 놓인 포대기를 열어보고는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새 서방님! 간밤에 누
처가로 돌아온 조생은 아무도 몰래 조용히 신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새색시는 고요히 눈을 감고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신혼 첫날밤 낳은 사내아이를 새신랑 조생은 새벽어둠을 뚫고 귀신도 모르게 밖으로 나가 어느 한적한 곳에 내버리고 오는 것으로, 이 일을 끝 마무리하려고 한 것일까? 간밤에 낳은 아이를 분명 아침까지 방안에 두고 있다가는 바깥사람들에게 발각될 것이 분명하였고, 또 발각되었다 하면 둘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에 직면(直面)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이었다. 밤새 고민하며 그렇게 판단한 조생은
“아이고! 배야! 그래, 거기 두고 가거라!”조생이 아픈 듯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 여종이 마루 위에 두고 간 미역국을 가져오더니 새색시 앞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여보! 이거 먹고 어서 기운을 차리시오!”조생이 수저에 뜨건 미역국을 떠서 새색시 입으로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조생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에 감격한 새색시가 눈물을 흘리며 미역국을 받아먹는 것이었다. 조생은 미역국 한 그릇을 새색시에게 다 먹이고 한사코 고개를 떨구는 새색시에게 말했다.“내 부탁이 하나 있소!”그 말을 들은 새색시가 고개를 들고, 대답 대신 참으로 난감한 표
종일토록 혼례잔치를 치르느라 몸이 피곤한 장모가 새신랑과 새색시가 신랑 각시가 되어 초야(初夜)를 잘 치르겠지 하고 생각하고는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새신랑이 비명(悲鳴)을 지르자 벌떡 일어나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헐레벌떡 뛰어나왔다.“아! 아이고! 자! 자네, 도도 도대체 어디가 아픈 것인가?”“시 실은 오늘 잔치 음식을 하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배가 너무 아프네요!”조생이 마당을 이리저리 뒹굴면서 말했다.“그 그래, 그렇다면 어서 의원을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장모가 소리쳤다.“그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서생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홍계관을 떠올렸다. 과연 그의 점이 참으로 신통하지 아니한가!“형부 이제 오셨나요?”그때 잠에서 깨어난 처제가 서생을 보고 말했다.“그 그래, 처 처 처제 오셨구만!”서생이 말했다. 저 ‘참을 인(忍)’자가 아니었다면 아내와 처제는 이미 이 세상 아니었을 것이었다.그 후로 서생은 매사를 꼼꼼하게 생각해 보는 버릇이 생겼고 또 무작정 화가 나는 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기분에 따라 행동을 함부로 했다가 자칫 잘못하면 얼마나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인가를 깊이 실감하게 된 것이었다.서생
서생이 어둠 속에서 흘끔 쳐다본 아내 옆에 잠든 자는 상투가 솟구친 것을 보니 영락없는 사내였다.“이 찢어 죽일 연놈이 나 몰래 붙어먹었단 말이더냐! 내 이 연놈들을!”서생은 찰나에 눈에 불 번개가 튀겼다. 무엇을 생각할 것도 자시고 할 것 없이 저 연놈들을 무조건 도륙시켜버려야 했다. 술기운이 얼큰하게 취해 올라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이던 서생은 이를 앙다물었다. 즉시 부엌으로 달려 들어간 서생은 시퍼런 식칼을 손에 번쩍 치켜들었다. 이대로 방으로 돌진하여 사정없이 저 연놈들을 찔러 죽여버려야 했다. 시퍼런 칼을 손에 거머쥔 서생
9대나 되는 친척들이 한집안에 살면서도 다툼이 없이 화평(和平)하게 사는 까닭으로 사람들의 입에 그 칭송하는 말이 오르내려서 북제(北齊)와 수(隨)나라 때 정려문(旌閭門)을 하사받은 집안이었다.당나라 고종이 어느 날 태산(泰山)에 올라 천제(天祭)를 지내고 운주를 지나는 길에 장공예의 집을 들르게 되었다. 고종은 장공예에게 말했다.“그대 집안은 어찌하여 이렇게 9대나 되는 일가친척들이 한 집안에 모여 살면서도 화목(和睦)할 수 있단 말인가?”장공예는 고개를 수그려 예를 표하고 나서 말했다.“폐하!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는 까닭은 윗사
그동안 그녀를 거쳐간 어떤 남자도 타일러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미군 병사들과 사랑을 나누고, 타락을 해서 때로 혼음을 할 때도…그녀는 그것들을 즐길 때마다 최고의 절정감인 줄 알았다. 하지만 타일러를 통해서 확실히 층위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산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나고, 강물을 지나면 또 다른 강물이 흘러가고, 또 이 구름을 타면 저 구름으로 옮겨지는 것처럼 절정감은 끝모르게 이어지고 있었다.타일러를 받아들이자 그 전의 모든 섹스들이 정말 시시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비쳐졌다. 까마득한 옛날 하찮은 소꿉놀이 장난같은 것
“잠깐 누워있어요, 샤워하고 올 게요, 내 사랑.”그녀는 그가 시키는대로 침대로 들어와 몸을 뉘었다. 그는 물만 묻히고 나오는지 금방 목욕실에서 나왔다.“와우, 원더풀.”물기 흐른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송안나를 내려다보며 타일러가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굴곡진 것 하나없이 깨끗한 몸매에 몸은 이십대 여자나 다름없이 탄력이 있었다. 마른 몸에 무너지지 않은 가슴, 살이 오른 엉덩이, 그리고 긴 팔과 긴 다리…누가 보아도 사십대 가까운 늙은 갈보로는 보이지 않았다.타일러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침대로 들어가자 그녀가 감기듯 하며 그를
공자가 말했다.“도(道)와 하나가 되면 좋다 싫다 하는 편향이 없어지고 만물과 더불어 변화하여 한 군데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너는 과연 현명하구나! 나도 네 뒤를 따르고자 한다.”무심지경(無心地境), 무위자연(無爲自然), 이 세상에 바랄 것, 마음 쓸 것,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무사무위(無思無爲) 좌망의 경지에 이르면 인간세(人間世) 부귀영화(富貴榮華)며 길흉화복(吉凶禍福)에 나아가 생노병사(生老病死)까지도 한갓 티끌 먼지만도 못한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 그게 바로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희노애락미발지(喜怒哀樂未發之)의 상태(
“어! 어흠! 그 그러한가!”서생은 순간 성난 자신을 되돌아보며 더듬더듬 말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던 홍계관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것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지요. 첫째, 점을 치러 와서는 내 운명은 내가 잘 알고 있는데 네 깐 놈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사람이나 둘째, 돈과 지위에만 눈이 멀어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전혀 수양(修養)과는 거리가 먼 욕심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나 셋째, 오로지 요행(僥倖)으로 좋은 운만을 바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이나 넷째, 허약(虛弱)한 정신(精神)으로
편작의 그 말을 들은 위 문왕은 그럴 수 있겠다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는 것이었다.편작의 일화(逸話)를 떠올리는 서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복선생!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 않소이까! 알고도 말을 해주지 않는다면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이까?”“어어흠! 그렇다면 손님께서는 세상의 어떠한 명의(名醫)라 하더라도 절대로 고칠 수 없는 여섯 부류의 사람, 즉 육불치(六不治)에 대하여도 잘 아시겠군요?”홍계관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육불치라? 지금 저 점쟁이가 나를 정말로 육불치로 보고 있단 말인가?’ 그 말을 들
“그 그렇다면 복선생! 그 일을 피해갈 묘책(妙策)도 의당 있을 것이 아니오이까?”서생이 마른 침을 다시며 다급하게 말했다.“아마도 손님께서는 그 급한 성정(性情) 때문으로 가르쳐 드린대도 도무지 피해가기가 힘들 것이외다!”홍계관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서생은 눈앞이 아득하였다. 천하에 이름을 떨칠 부귀(富貴)할 운명(運命)이라고 하였는데, 살인을 저질러 일신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니 이 얼마나 불길한 운명인가?“복선생! 내 듣자 하던데 사람을 치료하는 의원(醫員)도 그 급이 천차만별(千差萬別)
“손님은 앞으로 크게 될 인물이요! 과거급제하여 물론 그 벼슬이 정승 판서에 이르러 이름을 널리 떨칠 것은 물론 일신부귀(一身富貴)할 것이외다!”홍계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하! 정말이오?”좋은 점괘를 얻은 서생은 놀라 말했다.“그야 틀림없을 것이외다!”홍계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서생은 의기양양(意氣揚揚)하여 복채(卜債)를 듬뿍 꺼내 주며 말했다.“좋은 점괘를 뽑아주신 것에 대한 답례(答禮)요! 고맙소!”서생이 작별인사(作別人事)를 하고 일어서려 했다.“그 그런데 말씀이오……”순간 홍계
어쩌다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귀신(鬼神)이 곡(哭)을 할 일이 조생 자신에게 떨어져 버렸던 말인가? 조생은 눈앞이 캄캄하여 한동안 말을 잃고 그 광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니 당장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이 사실을 알리고 거짓말로 중매를 한 저 중매쟁이 할머니를 붙잡아 불벼락을 내려야 할 것이었다.조생은 눈이 확 뒤집혀 부르르 떨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고 벌떡 일어섰다. 새색시가 아이를 그것도 신혼 첫날밤에 아이를 낳는 이런 해괴하고도 치욕적(恥辱的)인 사태를 그만두어서는 절대로 아니 되었다. 이런 도의(道義) 없는 집안을
“아아!……”찰나에 조생은 속으로 짧게 신음을 토해냈다. 조생은 등잔불에 비치는 색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반쯤 너울이 벗겨진 신부의 얼굴은 온통 땀투성이였다. 한여름도 아닌데 포도알처럼 맺힌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조생은 너울을 마저 벗겨 올렸다.순간 조생의 눈앞에 비친 신부의 얼굴은 치 끓어 오르는 고통을 애써 참고 있는 온통 찡그린 표정이었다.“아!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조생은 놀란 목소리로 낮게 웅얼거리며 말했다.“아아윽!……”신부는 낮은 비명을 지르고는
“양반 부잣집에서 너무 적다! 너무 적어! 크게 한 번 더 뿌려라!”동네 사내들이 소리쳤다.“어허! 좋다! 어서 길을 열어라!”신부 측에서 나온 사내가 다시 철컹 엽전 꾸러미를 길 위에 던졌다. 숯 검댕이 나리가 그것을 얼른 주워들고 헤아렸다.“아하! 쉰 냥이다! 쉰 냥! 이제 길을 열까 말까!”“신부가 애간장 탄다! 어서 길을 열어라! 잡놈들아!”숯 검댕이 말끝에 할머니가 소리쳤다.“에이 잡놈들아! 신랑도 속이 탄다! 어서 길을 열어라!”또 다른 할머니가 소리쳤다.한바탕 또 옥신각신 밀고 당기는 놀이가 있고서야 마침내 조생은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