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사또 나리! 잘못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를 해주십시오!”순간 명령불복종죄로 불려 나온 서른다섯의 아전과 포졸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동시에 외쳐댔다. 그것을 본 이방이 무릎을 꿇고 정사또를 보고 말했다.“사또 나리! 이들이 모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오니, 사또 나리께서 딱 한 번만 인정을 베풀어주시옵기 바라옵니다!”“뭐라? 이방은 그 입 닥치라! 지엄한 국법을 아는 자가 그 무슨 망발이냐! 어서 저자를 형틀에 묶어라!”정사또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나졸들이 우르르 일직사령에게
정사또가 술에 만취해 술주정 객기(客氣)로 잠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벌린 일로 알고 그만 슬그머니 지나가 버릴 줄로만 알았는데 그 목장승을 정말로 문초하려고 했단 말인가? 허허! 늙은 스님이 장길에 종이 지게를 잃어버린 바람에 그 도둑놈을 잡을 길 없었던 관아의 사또로서 그것을 해결할 길이 도무지 없을 것이니 자격지심(自激之心)으로 그만 술을 마신 김에 술주정으로 적당히 때우고 만 것이라 여겼는데 정말로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그렇다면 뒤뜰에 놓아둔 그 목장승을 관아 마당으로 다시 가져와 놓고 문초를 하면 될 것이지 애꿎은 일직사
짜증 섞인 말을 하는 포졸들을 보고 포도대장이 말했다.“이놈들아! 말조심하거라! 또 날벼락 떨어질라!”정말로 명령불복종죄(命令不服從罪)로 오라에 묶여 경을 칠뻔했던 포도대장이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세상천지에 목장승을 보고 도둑놈이라고 그 목장승을 체포해 압송하라니 정신이 반 바퀴를 핑 돌아버린 자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하지 못할 일이 아닌가? 술을 마셔 취하면 속에서 미친 광기(狂氣)가 솟아올라 부하들을 마구 괴롭히는 사또라고 한다면 큰일이 아니겠는가? 포도대장과 포졸들은 한밤에 정말로 홍두깨 맞은 격으로 정신이 얼얼했던 것이었
순간 정사또가 머뭇거리는 포졸들을 바라보며 불호령을 했다.“네 이놈! 네놈이 소관을 능멸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뭣들 하느냐? 어서 저놈을 붙잡아 오라를 지워라! 머뭇거리는 놈들도 모조리 붙잡아 주리를 틀리라!”정사또의 그 말을 들은 포졸들이 포도대장을 붙잡으러 달려들었다.“이놈들아! 뭣들 하느냐? 사또 나리 명령이다! 어서 저 도적놈을 붙잡아 포박하라!”포도대장이 달려드는 포졸들을 바라보며 호령했다. 정사또의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명령에 포도대장이 도무지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목장승을 가리키며 붙잡아 포박하라고 명
“좋다!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출동하라 일러라! 어서 저 도적놈을 붙잡아 관아로 압송하라! 만약 오지 않는 놈은 주리를 틀리라!”“예! 사또 나리!”정사또의 명령을 들은 마부가 부리나케 관아를 향해 달려갔다. 정사또는 정말로 저 목장승을 늙은 스님의 종이 지게 짐을 짊어지고 달아난 도둑놈으로 붙잡아 관아로 압송해 갈 것인가?한참 후 마부를 따라 관아에 있던 포졸들이 말을 타고 우르르 창칼을 들고 달려왔다. 오늘 밤 관아를 지키고 있던 포졸들이 어림잡아 스무 명이 넘었는데 모두 출동한 것이었다. 마부가 도둑놈을 붙잡으라는 정사또의
“네 이놈! 잔말 말고 어서 관아의 포졸들을 전부 동원해 오너라! 늦게 당도한 놈은 네 주리를 틀리라!”정사또가 눈을 부릅뜨고 마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사또 나리! 정말로 저것은 도적놈이 아니라 목장승입니다요! 정신을 차리십시오! 제 목을 내 놓겠습니다요!”마부가 무릎을 꿇고 소리치며 제 목을 길게 늘어뜨렸다.“허허! 이놈 봐라! 이놈이 나를 아주 이름만 앞세우는 허깨비 사또로 만들려 하는구나! 백성의 피나 빨며 가난하고 억울한 백성의 고통은 하나도 해결해 주지도 못하고 오로지 자리에 앉아 사또라고 군림이나 하면서 관록이나 챙기고
정사또가 다시 사납게 소리쳤다. 분명 정사또는 저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 써 내려진 목장승을 보고 도둑놈 타령을 하고 있었다. 기가 떡 막힌 마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술에 만취한 정사또는 단언컨대 실성(失性)을 해버린 것이라고 마부는 생각했다. 마부는 길 가운데 두 무릎을 꿇고 정사또를 바라보며 다시금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사또 나리! 저건 분명 목장승이옵니다! 절대로 도적놈이 아니옵니다! 진실로 목장승이 아니라면 제 목숨을 당장 내놓겠습니다요!”“어허! 이놈 보시게나! 열 손가락에 장을 짓겠다
마부가 자신 있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허허! 그래! 열 손가락에 장을 짓겠다! 그런데 너 좀 달리 생각을 해 보거라! 내가 세상을 살면서 보니 분명하다고 단언(斷言)하는 것이 나중에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가 참 많으니라!”정사또가 조용히 말했다.“아이구! 사또 나리! 절대로 그 도둑놈을 잡을 수가 없다고 말 하셨지 않나요? 소인이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 종이 지게 지고 간 도둑놈을 잡기는 참 어려울 것 같은데요!”마부가 소리 높여 말했다.“으음! 세상사란 아무리 확신이 들더라도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서야 절대로 목숨을
정사또가 핀잔을 하며 말했다.“아이고! 사또 나리! 소인, 듣고 보니 참 그렇군요! 그런 좋은 수가 있었는데!……”마부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치며 말했다.“또한, 늙은 중의 오줌 뿜어대는 가운데 그것을 보고 어여쁜 새댁이 얼굴이 화들짝 달아올랐다손 치더라도 그게 무어 대수란 말이냐! 비실비실 밤일도 잘못하는 서방 놈을 두었다면 그것을 들여다봄으로써 열반삼매경(涅槃三昧境)을 찰나에 증득(證得)하고 ‘아아악!’ 하고 한 길가에 서서 두 눈을 가리고 홍당무가 되어 선 비명을 지른다면 그 이상 훌륭한 노상방뇨(路上放尿) 육도법문(肉道法
마부가 벌벌 떨며 말했다.“허허! 이놈아! 어차피 사람이 태어났으면 반드시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인즉, 저곳에서 이곳으로 몸을 입고 빠져나오는 것을 태어나 사는 것이라 하는 것이라면, 몸을 벗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거늘 무어 그까짓 것을 그리 두려워할 것이 있단 말이냐!”정사또가 싱겁다는 듯 말했다.“아이고! 그래도 소인은 죽음이 두렵습니다요!”마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거 참! 고놈 겁도 많구나! 이다음에 너 죽을 때 어떻게 죽으려고 그러느냐?”정사또가 다시금 말 등 위에서 앞뒤로 쓰러질
“뭐라! 어서 썩 나가거라!”어린 기생 청아의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단정(斷定)하는 말을 들은 정사또가 버럭 화를 내며 그녀를 사정없이 내쳐 버렸다.“아이구! 사또 나리! 잘못했사옵니다!”어린 기생 청아가 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말했다.“물러가라! 듣기 싫다!”정사또가 다시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은 어린 기생 청아가 일어나 절을 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어찌하여 술 한잔을 편히 마실 수가 없단 말이냐!”정사또가 술병을 들고 빈 잔을 채워 술을 마시면서 혼잣소리를 했다. 그사이 예향옥의 늙은 주모가 쏜살같이 정사또의 방문을 열고
“캬아! 청아야! 달고도 맛있구나! 한 잔 더 부어보려무나!”정사또가 술을 들이켜고 나서 쩝! 하고 술맛을 음미하며 소리쳤다.“예! 사또 나리! 술맛이 그리 좋으신지요?”어린 기생 청아가 술병을 들고 기울여 술잔을 채우면서 말했다.“허흠! 그렇구나! 본시 주미(酒味)라는 것은 술자리를 함께 하는 자의 인향지덕(人香之德)의 품격(品格)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니라! 너는 그 뜻을 알겠느냐?”조용히 술을 받으며 정사또가 말했다.“사또 나리! 저는 나이가 어려 아직 그 뜻을 깊이 헤아려 다 알지는 못하겠습니다마는 기쁨으로 먹
“예예! 사또 나리! 사사 삼만이옵니다!”기생과 취객들이 일제히 크게 대답을 하고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사또는 주인 여자와 어여쁜 어린 기생 하나가 안내하는 방 하나를 잡고 앉았다.방에 앉자마자 술상이 차려지고 닭고기에 생선에 쇠고기 육전이며 갖가지 풍성한 안주가 들어왔다. 한 고을의 최고 수장 사또의 술상이 절대로 소홀할 리가 없었다.“어 어흠! 어서 술잔이나 채우거라! 한잔 먹어야겠다!”정사또가 술잔을 들고 재촉했다.눈망울이 이른 밤 서녘 하늘에 뜨는 샛별처럼 초롱초롱하고 피부가 맑은 다홍 저고리에 초록색
정사또가 기방(妓房)에 들어가 방 가운데 좌정(坐停)을 하자 그새 가야금 타는 기생이 방 윗목에서 ‘둥기둥 둥당!’ 가야금을 퉁겨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옆방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나이 어린 젊은 기생 둘이 종종걸음으로 쪼르르 달려와 정사또 앞에 서서 무릎을 꿇고 단정히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사또 나리! 옥단(玉丹)이라고 하옵니다!”눈이 크고 피부가 새하얀 기생이 함빡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허흠! 옥단이라! 이리 와서 앉거라!”정사또가 옥단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또 나리! 저는 홍화(紅花)라고 하옵니다.”키가 크고 보조개가 깊
엎드려 울부짖으며 그 모습을 본 늙은 스님은 어이가 없어 백마를 타고 가는 정사또의 뒤를 바라보며 혼잣소리로 말했다.“어허! 어찌하여 저런 자가 명판관(名判官)이라고 조선천지(朝鮮天地)에 소문이 자자하단 말인가? 저런 자가 어찌하여 한 고을의 백성을 책임지는 목민관(牧民官)이란 말인가? 참으로 한심한 세상이로구나!”늙은 스님은 엎드린 몸을 일으켜 서서히 일어나 덕지덕지 기워 입은 흙 묻은 승복(僧服)을 마른 소나무 등걸처럼 쭈글쭈글한 깡마른 손으로 툭툭 털었다. 주름진 얼굴에 흘린 눈물이 얼룩이 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전이며
늙은 스님이 울먹이며 말했다. 그 늙은 스님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정사또가 갑자기 고함을 치며 말했다.“아무리 그렇더라도 오줌을 누고 있는, 그 사이에 종이 지게를 짊어지고 달아나 버렸다는데 분명 본 사람도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귀신이라고 한들 어떻게 그 도둑놈을 잡을 수가 있겠소! 오늘 노스님께서 일운대흉(日運大凶)하여 도적살(盜賊殺)이 들었는가 보이다! 모든 걸 다 체념하고 돌아갈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 같소이다!”정사또가 늙은 스님을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그 광경을 관아 안에서 일을 하는 아전이나 포졸들이 그것을
그런데 김규수의 기가 막힌 묘수(妙手) 한방으로 천하에 그 음흉한 흉계를 모조리 밝혀낼 수 있었으니 이사또도 그 김규수의 지혜에 대하여 놀라 깊이 찬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사또가 먼저 ‘이미 두 사람이 서로 혼약한 사이라면 신부의 몸의 특징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숨김없이 말해 보아라!’ 하는 그러한 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또 그러한 계략은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는데 마침 김규수가 그러한 수를 들고나와 전모(全貌)를 확연하게 밝혀내고 말았으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지 않았다면 이 송사가 오리무중(五里霧中)
“그 간단한 것을 아직 모른단 말이오?”허공달이 빙그레 웃으며 최부자를 바라보았다.“어어 어흠!.......”최부자가 대답 대신 헛기침을 했다.“자! 그럼, 최대인 지금 한번 그 목숨줄을 놓아 보시지요? 그 까닭을 즉시 알게 될 것이오이다! 하하하하하하!”허공달이 말을 마치고는 크게 웃음을 웃는 것이었다.최부자가 순간 눈을 번쩍 뜨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곤장을 맞은 엉덩이 깨가 아려오고 쓰라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며 앉았다. 그리고는 밖을 바라보고 소리쳤다.“여보시오! 포졸 나리!”“어허! 죄인이 무슨 일인가?”감옥을 지키는
“아들아!”최부자는 울상이 된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있는 아들을 조용히 불렀다.“예 예! 아버님.”꼽추 아들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얼른 말했다.“너는 그 좀 전에 그 김규수가 좋더냐?”최부자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 아이고! 아버님, 저……저는 그 여인이 너무 무서웠습니다.”꼽추 아들이 더듬거리며 말했다.“왜 무섭더냐?”무섭다는 꼽추 아들의 대답에 최부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그 눈빛이 거짓말을 하는 저의 마음을 매섭게 쏘아보는 것만 같았습니다.”꼽추 아들이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돈 힘
“허허! 그것을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제 목숨을 부지하려고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최부자가 싱겁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황금 즉 돈보다도 제 목숨이 소중하기에 버린다는 것이로군요? 그런데 그 황금이 굶주린 가족을 살려야 하고, 천하만민(天下萬民)이 그 황금 아니면 죄다 죽는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소이까? 최대인께서는 내 목숨 하나 살자고 그것을 버려 모두를 죽이시겠습니까?”허공달이 차분히 말했다.“허허! 허공, 어차피 그것을 가져가지도 못할 바에야 버리고 목숨이라도 부지하여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소?”최부자가 조금도 주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