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광주 어른 본보기 회재 박광옥 가문
신라왕족 후예인 용장 박서 중시조
고려에 충절지켜 전라도로 낙향
전시에나 평시에나 베푸는 애민정신

도학 실천해 향약으로 향촌 교화 앞장

벽진서원 강당 숭본당 모현당

광주시민에게 사랑받는 광주 금당산의 황새봉 자락에는 음성박씨 가문이 보존하고 있는 벽진서원이 있다. 임진왜란에 의병도청을 세우고 광주 일대의 의병 군사와 병장기·군량들을 모아 고경명·김천일 의병군에 조달하는 공을 세웠던 회재 박광옥을 기리는 서원이다. 벽진서원은 충장공 김덕령을 추가 배향하면서 의열사로 사액받았다가 고종조에 철폐된 후 운리영당, 운리사로 복설했다가 광주 유림과 종중의 노력으로 추모와 교학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회재유집목판(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 등 선조가 남긴 문화유산과 투철한 공공정신·충의정신을 보존·계승해 온 음성박씨(陰城朴氏) 정승공파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 본다.

벽진서원 현판
벽진서원 현판

 

◇혁거세 후손 박서 중시조
음성박씨는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를 비조로 하고 신라 경명왕(신라 54대왕)의 네째아들 죽성대군의 10세손인 박서를 중시조로 모신다. 박서(1181~1183, 호는 죽계, 시호는 충정공)는 무과 급제하고 봉선고판관, 수의어사를 거쳐 서북면병마사를 역임했다. 그는 고려 고종조의 몽고군의 1차 침입 때 서북면병마사로서 귀주성에서 대우포(공성병기를 파괴시키는 긴 칼) 등 병기를 개발해 항전함으로써 살리타이의 공격을 격퇴한 철혈용장이다.그는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르고 음성백에 봉해졌으며 경기 고양의 용강서원에서 추모한다. 음성박씨는 그를 중시조로 모시고 그가 귀향한 충북 음성을 본관으로 세대를 잇고 있다. 그의 아들 박재는 공부상서에 올랐고, 손자 박현계는 전리총랑·평해부사를 역임하고 조적의 난(충숙왕 14년)을 평정한 공신이다. 4세 박문서는 강화부사를 역임했고, 그의 동생 박문길은 문하시랑에 올랐다.

박문서의 아들인 5세 박원(1345~1420)은 학덕이 높아 길재, 정몽주와 교유했으며 고려 사재감정 보문각직제학 첨의정승을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지켜 처가가 있는 전라도 정읍으로 낙향해 은거했다. 그가 정승공파를 열었다. 박원의 아들인 6세 박계양(개명 박돈지)은 처가가 있는 광주 서면 유등곡으로 이거해 입향해 세거했다. 7세 박형지는 예빈사주부를 지냈고, 8세 박자회는 장사랑 전연사참봉을 지냈고, 그의 동생 박자유는 장사랑 천문습독을 역임했다. 박자회의 아들인 9세 박붕, 박곤 형제가 연산조에 문과급제해 가문을 빛냈다. 박붕은 문과급제하고 판관을 지냈다. 그의 동생 박곤은 문과급제해 성균관사예를 역임했다.

회재 박광옥 영정
회재 박광옥 영정

◇조선판 노블리스 본보기 박광옥
박곤의 아들인 10세 박광옥(1526~1593, 호는 회재)은 임억령, 임백령의 외사촌이며 기대승, 박순, 노사신 등과 교유한 학자이다. 그는 진사시에 입격하고 개산송당을 열어 성리학을 연구했으며 광주목사를 도와 향교를 중수하고 학헌·학규를 제정했다. 풍속을 교화하기 위해 선도향약을 창립했고, 1568년에는 백마산과 개금산 사이에 개산제(현재의 매월동 전평제)를 축조해 일대의 가뭄 것정을 해소했다. 선조조에 문과급제해 운봉현감으로 있을 때 황산대첩비를 세웠고, 전라도·충청도 도사, 예조정랑, 사헌부지평, 성균관직강을 역임했다. 영광군수, 밀양부사로서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정여립옥사에 연루돼 삭탈관직됐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김천일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광주의 의병도청을 담당해 가산을 출연하고 의병군의 군비와 군량을 조달했으며 의병에 참여할 군사를 모병해 권율의 군대에 보내는 등 임란에 공을 세웠다. 의병 활동의 공로로 나주목사를 역임하다 사망했고 회재유고를 남겼다. 유림과 가문은 1602년 벽진촌(서창동 일원)에 벽진서원을 세워 그를 추모했고 숙종조에 김덕령을 추배해 의열사로 사액됐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1927년 운리영당으로 설립한 것을 운리사로 복설했고 현재의 벽진서원으로 개칭해 추모하고 있다. 나주 남평교에서 서창방면으로 칠석동, 풍암동을 지나 광주 백운동에 이르는 길을 ‘회재로’라 칭함으로써 그의 행적과 정신을 기리고 있다.

◇서원 교육기능 부활에 힘써
박광옥의 형 박광정, 사촌 박광종 등이 생원시에 입격해 가학을 빛냈다. 박붕의 아들 박광문은 경양도찰방을 역임했다. 종서문중을 비롯한 후손들은 결속을 통해 향약을 지키며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회재유고를 비롯한 가문의 보배로운 유산을 보존하면서 벽진서원을 추모와 교육의 거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학생과 시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서원에서 운영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문화유산으로서 벽진서원의 가치가 인정돼 광주서구 향토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됐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의열사
의열사 강당 현판
벽진서원 전경. 사진 / 음성박씨 정승공파 종가 제공
벽진서원 강당
회재유집 목판(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회재유집 목판전시관
벽진서원 입구 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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